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트해 전역 (문단 편집) === 1941년 - 독일군의 침략 === ||[youtube(3voOeO9bXPQ)]|| 북부집단군의 1941년 중 에스토니아 전역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. 위에 언급했듯이 [[레닌그라드]]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. 나치독일의 OKH(독일 육군 최고사령부)는 소련 침공을 위한 계획을 세울 임시조직을 설치한다. 그리고 18군 참모장인 에리히 마르크스는 주력을 둘로 나누어 [[키이우|키에프]]와 [[모스크바]]를 공격하고 조공으로 레닌그라드를 공격하는 안을 냈다. 이 안은 [[바르바로사 작전]]의 뼈대가 됐다. 하지만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도 같이 점령할 것을 명했고 최종적으로 3개의 집단군이 소련을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이 완성됐다. 레닌그라드를 공격하기 위해 [[빌헬름 리터 폰 레프]] 장군이 지휘하는 북부집단군이 창설됐다. 북부집단군은 4기갑집단 선두에서 돌파하고 양쪽에서 18, 16군이 진격하며 제1항공군이 엄호하기로 예정되었다. 또한 3개 집단군 중 유일하게 해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. 그러나 북부집단군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처음 안은 조공이었고 나중에 주공으로 바뀌었어도 관할 지역이 작다는 이유로 제대로 보급을 받지 못했다. 특히 [[모스크바 전투]] 때 4기갑집단을 중부집단군에게 넘겨주었는데 처음부터 작았던 북부집단군은 더 쪼그라들어서 돌파력까지 잃고 레닌그라드를 포위만 한 채 점령을 하지 못하게 된다.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이유로 역사에서도 비중이 들러리가 된 것이다.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해군은 병력과 물자를 최대한 지원해줬고, 전쟁이 끝날 때까지 북부집단군은 해군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